우주에는 '지금'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켄타우루스자리의 알파성이 어떤 모습인지는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항성의 정보를 전달하는 빛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저 최소한 4.3년 전에 형성된 모습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에서도 시간과 공간과 광속의 관계는 우주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구의 거리가 훨씬 짧다는 것입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친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빛이 우리 눈에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억 분의 1초도 되지 않습니다. 이 시간은 우리 뇌가 감지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 간격보다도 1000배 정도 짧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지연됐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구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규모가 큰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는 '지금'이라는 개념에 아주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똑같이 현재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심해도 됩니다.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하는 시간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거나 다른 중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실재를 본질적으로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는 공통된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절대적인 시간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실제로 존재하는 공통된 시간으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시간에 나타나는 상대론적 효과를 분명하게 느끼려면 두 사람이 뚜렷하게 다른 중력을 경험하거나 두 사람 모두 분명하게 빛의 속도에 근접하는 속도로 서로에 대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70억 인구 모두가 거의 같은 중력을 경험하며, 제트 여객기를 타고 여행을 한다고 해도 그 속도는 빛의 속도의 100만 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시공간은 하나다
시공간의 네 차원에는 각각 공간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말은 시공간은 일종의 지도라는 뜻입니다. 4차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도는 지도입니다. 지구를 나타내는 지도에 뉴욕, 로스앤젤레스, 그랜드 캐니언 같은 장소가 있다면 4차원 시공간 지도에는 빅뱅, 지구의 탄생, 우주의 끝 같은 장소가 있습니다. 물론 당신의 일생도 4차원 시공간 지도에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저 고집스러운 환상일 뿐이고 우리가 실제로 시간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걸까요? 실제로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뿐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어째서 우리에게 과거는 L. P. 하틀리가 말한 '외국'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시간이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깨진 컵 조각을 공중으로 집어던져봅시다. 깨진 조각들이 한데 모여 원래 상태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컵을 온전한 상태로 돌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인 것입니다. 그와 달리 깨진 조각이 더욱 산산조각 날 길은 무수히 많습니다. 컵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길보다 더 잘게 부서지는 길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컵은 깨지고 또 깨집니다. 이것이 바로 시간이 뒤로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만 가는 이유입니다. 성은 무너진 뒤에 다시 성이 될 수 없으며, 한 번 식은 커피는 다시 뜨거워지지 않으며, 나이가 든 사람은 다시 젊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19세기에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이 열역학 제2법칙을 새롭게 진술한 방식입니다.
생존에 유리하도록 시간을 인지한다
제임스 하틀(James Hartle)은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했을 때, 생명체들이 시간을 인지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연된 현재를 경험하는 생명체도 있었고, 현재를 두 개 혹은 세 개로 인지하는 생명체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연된 현재를 인지하는 청개구리의 삶을 생각해보라고, 그 청개구리의 삶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라고 하틀은 말합니다. 지연된 현재를 인지하는 청개구리가 파리를 보았다고 생각해봅시다. 개구리는 분명히 혀를 길게 뻗어 파리를 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청개구리의 정보는 낡은 것이기 때문에 청개구리가 혀를 완전히 뻗었을 때는 이미 파리가 날아가버린 뒤일 것입니다. 이런 정보 처리 방식은 생존에 불리하므로 불행하게도 결국 청개구리는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하틀은 그래서 우리가 가장 최근에 모은 정보에 집중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지금'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현실을 경험하는 다른 모든 방식은 생명체를 멸종으로 이끌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틀은 우주의 다른 곳에 생명체가 산다면, 그 생명체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