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DNA와 침팬지의 DNA가 98~99퍼센트나 일치하지만 침팬지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도시를 건설하지 못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로켓을 만들어 달까지 날아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유전자에 생긴 1~2퍼센트 차이가 현실 세계에서는 수십억 퍼센트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동자의 색부터 혈액형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단백질 생성을 좌우하는 유전자, 즉 일련의 지시 내용을 담은 DNA 분자 모형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DNA에는 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유전자 중에는 다른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 꺼서 발달하는 배아에서 발현해야 하는 유전자 순서를 조절하는 유전자도 있습니다.
조절 유전자는 요리법이고 일반 유전자는 요리 재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요리법이 다르면 전적으로 다른 요리가 되는 이치입니다. 이는 마치 사람과 침팬지처럼 전혀 다른 두 종으로 갈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
사람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는 음식이나 아이를 옮기고 도구를 제작하고 무기를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먼 곳까지 먹이를 찾아다닐 수 있었고, 아주 먼 곳에 있는 포식자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립 보행 덕분에 인류가 큰 이득을 얻었다는 다윈의 주장은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 다리로 온전히 서려면 몇 세대는 지나야 하는데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두 발로 걷는다고 해도 생존에는 분명히 이득이 없었을 것입니다.
도구는 바뀌지 않았다
인류가 처음 돌로 만든 도구를 사용한 증거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라져 가던 시기인 260만 년 전 화석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인류에게 도구를 만들 지혜가 생기고 도구를 이용해 고기를 발라내자 송곳니가 작아졌습니다. 송곳니가 작아지고, 송곳니를 움직이는 커다란 턱 근육이 필요 없어지자 두개골과 뇌가 더 커질 여건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런데 화석 증거는 이 가설을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 조상으 ㅣ송곳니가 도구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작아졌음을 보여줍니다.
인류는 260만 년 전에 돌을 깨뜨려 모서리를 날카롭게 만든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100만 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이러한 형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구가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조상이 바뀌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한가지 예시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들 수 있습니다. 사냥하고 죽은 고기를 찾고 잡은 먹이를 큰 포식자에게서 안전하게 지키려면 분명히 여러 개체가 높은 수준으로 협동의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이 주로 한 개체하고만 짝짓기 하는 그런 일부일처 성향은 아마도 남성들이 여성을 두고 다투면 사냥할 때 서로 협동할 수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프리카를 떠나다
180만 년 전쯤에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 요람을 떠나 아시아 서부로, 다시 아시아 동부와 유럽 남부로 이동했습니다. 이 무렵의 인류 화석은 중국, 인도네시아 자바 섬, 조지아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많은 바닷물이 빙하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동남부 지역은 지금보다 훨씬 넓은 대륙이었고, 자바 섬 같은 곳도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흔히 인류의 요람은 아프리카라고 알려져 있지만, 아프리카 밖에서 진화한 뒤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간 호미닌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로서는 화석 자료가 부족하여 이 가설을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는 없는 상태입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법
반복적으로 추워지는 지구에서 살아야 했던 호미닌은 지속적으로 환경의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결국 추운 지방에서 사는 종은 멸종하고 적도 근처에 살던 종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구 생명체와 달리 호미닌에게는 확장하는 얼음에 반응하여 덜 가혹한 서식처로 이주하는 방법 외에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의 가죽을 두르고 불을 지펴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불의 사용과 요리
인류가 최초에 어떻게 불을 사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는 100만 년 전쯤에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나오기는 했지만 논란이 많습니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확실한 증거는 고작 수십만 년 전입니다. 사실 직접 불을 피우는 기술은 지금도 아주 어려워서, 혼자서 불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한 사람이 불을 피우는 기술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가 죽는 순간 그 기술은 인류 자산 목록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치아와 턱이 작습니다. 이것은 150만 년 전부터 이미 인류가 음식을 조리해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실제로 음식을 조리해 먹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20만 년 전쯤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과 초기 현생 인류에게서 나왔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현생 인류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진실은 미묘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아프리카가 아닌 지역에서 사는 현생 인류의 DNA 중 2.5퍼센트 정도는 네안데르탈인의 DNA로 여겨지는데, 이는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이종교배했다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현생 인류의 조상이 사촌 종과의 경쟁에서 약간의 우위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세대를 거쳐 증폭되면서 결국 현생 인류가 전체 영토와 사냥감을 차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럽인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은 현재 유럽인보다 몸집과 뇌가 5퍼센트에서 10퍼센트 정도 더 컸습니다. 그 이유는 몸이 커야만 힘이 세져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은 대체로 크로마뇽인이 살았던 환경보다는 혼화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어김없이 뇌가 작습니다.